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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DU 졸업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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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2월 우수작] 귀향, 삶을 Reset하며 - 주영희 등록일 2015-03-04 조회수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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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우수작] 귀향, 삶을 Reset하며 - 주영희

201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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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살아가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니?[귀향] 삶을 Reset하며...남들보다 이른 결혼을 한 후, 나는 못 다한 학업에 대한 회한과 불만그리고 삶을 좀 더 당당히 치열하게 살지 못한 후회감으로 가득 차 귀하디 귀한 젊음의 시간들을 마음껏 펼쳐보지도 못한 채 피지 못한 꽃봉오리처럼 시들어 갔다.한국어문화학과 주영희

장대하고 웅장한 눈덮힌 캐나다의 록키산맥을 지나 망망대해 북국해의 상공을 건너며, 나는 원망하며 떠났으나 결코 버릴 수 없는 내 조국 대한민국과 철없이 어긋나기만 했던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움과 그리움 그리고 지난했던 내 젊은 날을 회상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풀지 못하는 문제들에 당황하며 허둥지둥 시험을 치르다, 결국엔 늘 답안지를 다 채우지 못한 채 안타깝게 시험이 끝나고 마는 허망하고도 답답한 꿈을 자주 꾸곤 했다. 꿈에서 깨면 문제를 다 풀지 못한 내 어리석음에 늘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남들보다 이른 결혼을 한 후, 나는 못 다한 학업에 대한 회한과 불만 그리고 삶을 좀 더 당당히 치열하게 살지 못한 후회감으로 가득 차 귀하디 귀한 젊음의 시간들을 마음껏 펼쳐보지도 못한 채 피지 못한 꽃봉오리처럼 시들어 갔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한 부모님의 불화는 우리 남매를 가정의 울타리를 너머 밖으로 내몰기에 충분했다. 오빠는 군대를 제대하고 머나먼 인도네시아 밀림지대의 직장으로 지원하여 파견을 나갔고, 가슴 저미는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 본 나 또한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 아직은 어린 나이에 철없이 결혼을 했다. 하지만 아내로서 또한 며느리로서의 충분한 소양이나 준비 없이 마치 소나기를 피하듯 심신의 안녕을 위해서 선택한 결혼생활은 생각처럼 평안하고 안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시부모님과 함께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부지런히 살았다. 그런데 결혼생활 7년이 넘도록 내겐 아이가 생기질 않았다. 집안의 대소사가 반복되는 지루하고 힘겨운 생활의 연속 속에 점점 허약해지며 삶의 의욕을 잃어갔던 나를 신께서 가엽게 여기셨던지! 결혼 8년 만에 기적처럼 천사같이 어여쁜 딸 아이 하나를 얻게 되었다. 많은 은총으로 물오른 나무처럼 쑥쑥 자라나는 아이와 함께 나는 모처럼 따뜻하고 평화로운 가정적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가끔씩 찾아오던 “너는 누군데, 왜 세상에 태어나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 거니?” 라고 불쑥불쑥 말을 건네는 내 안의 질문이 많았던 또 다른 나만 없었더라면... 아이가 학교에 다니게 되고 시간의 여유가 생긴 나는 무수히 문화센터나 문화학교의 강의들을 듣기도 하고 취미생활을 즐기며 생황의 활력을 찾아보려고 바삐 움직였으나 내 안의 불만투성이 그녀는 가끔씩 내게 반문을 해댔다.
“니가 살아가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니?”라고.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높고도 험난한 파도가 한국사회를 덮쳤다. 탄탄했던 남편의 직장에도 명예퇴직이라는 명목으로 해고의 비바람이 몰아쳤다. 우리 가족에게 도 큰 변화의 파고가 일렁였다. 40여년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부모님과 형제자매 그리고 정겨웠던 이웃들을 뒤로하고 정든 고향과 조국을 떠나 머나먼 이국 땅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를 벌거벗겨 내친 한국사회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 그리고 직장생활 20여 년 동안 저축한 얼마간의 적은 돈을 가지고 새로 시작한 캐나다에서의 이민생활은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녹록지 않았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광야에 홀로 서있는 나무처럼 춥고 외로운,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말도 통하지 않는 캐나다에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그동안 해보지 못한 전자제품 수리 같은 이런저런 육체적인 일들도 마다하지 않고 해야만 했다.

아이의 미래만 바라보며 앞만 보고 달려왔던 캐나다에서의 10여년의 고단한 삶 속에서 나는 우연치 않게 요가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요가는 꿈속에서 내내 문제를 풀지 못해 시험지를 빼앗기며 하지 못한 공부에 안타까워했던 나를 원광디지털대학으로 이끌었다. 머나먼 캐나다에서도 한국말로 편히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도 경이로 왔다. 컴퓨터에 익숙치 않아 어려움이 있을 때면 딸 아이가 먼저 나서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뒤늦은 나이에 일하는 시간을 쪼개 밤을 지새며 힘겹게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는 엄마를 몹시 안쓰러워 하면서도 내심 자랑스러워했다.

공부는 즐겁다. 요가로 시작했던 원광디지털대학에서의 공부는 다시금 내게 새로운 학업의 길을 안내해 주었다. 외국인이 현재 살고 있는 나라에서 신속히 적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지는 것이 급선무이다. 캐나다에서 살아가며 가장 힘들었던 것도 자유롭지 못했던 언어로 인한 문제들이었다. 또한 조국을 떠나 외국에서 자라고 있는 이민 2세 아이들에게 현지 언어와 조국의 언어로 자유롭게 쓰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조국에 대한 자긍심의 함양은 물론 미래에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데도 이중 언어의 구사라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어 큰 장점이 된다. 나는 고심 끝에 욕심을 내어 요가·명상학과와 한국어문화학과를 복수전공하기로 결정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이제 열흘 남짓한 시간이 지나면 그동안 정들고 익숙했던 학교생활에서 졸업을 하게 된다. 문득 생각해보니, 힘든 길을 회피하며 일신의 안락과 무사안일을 행복인양 여기며 살아온 내 어리석고 게을렀던 젊은 날을 질책하며 원광디지털대학이라는 새로운 삶의 길로 안내한, 삶의 의미를 물으며 나를 힘들게 했던 의구심 많던 내 안의 그녀가 고맙게 여겨진다. 50대 후반의 이순을 바라보는 나는 이젠 삶이 결코 부끄럽지도 후회스럽지도 않다. 늦었지만 열심히 공부했고 남은 시간을 자신은 물론 이웃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어엿한 여대생이 되었으니까.

일로든 공부로든 어렵고 힘들 때, 늘 곁에서 위로해 주던, 어느덧 머리엔 하얀 서리가 내린 남편과 질풍노도와도 같은 방황의 사춘기를 잘 극복하며 적응하여 케네디언들도 들어가기 어려운 토론토대학 치의학대학원에 당당히 함격해 준 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나아가 소수자로서의 삶이 팍팍하고 외로울 때, 아직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영적으로 위안을 주셨던 원광디지털대학 요가·명상학과의 서종순 교수님과 라제쉬 교수님, 또 앞으로 내가 가고자하는 길의 나침반이 돼주고 계시는 한국어문화학과의 최은지 교수님 그리고 마치 자매처럼 다정하고 푸근함을 주시던 사회사회복지학과의 이경욱 교수님, 그 외 많은 교수님들과 친절했던 여러 조교님들에게도 영광을 돌리며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

앞으로 불과 3시간 후면 그리웠던 내 조국 한국에 도착한다. 긴 세월이 흘렀고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했던 내 젊음의 슬픈 역사는 이제 돌아온 귀향의 조국엔 없다. 한국에서 나처럼 소수자의 삶을 살고 있을 이방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안내하고 도움을 주며 남은 삶의 의미를 새기고 싶다. 또 남들의 평가나 스팩같은 것들에 좌우되지 않는 진정 하고 싶은 요가공부를 더 깊이 할 것이다. 원광디지털대학에서 공부한 지난 4년의 시간은 이제 그리움이 되었다. 그 그리움은 더 큰 사랑으로 피어나 내 노후의 삶을 밝고 깊이 있게 비춰줄 것임에 틀림없을 거라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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