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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쇄원의 음양적 성격 작성일 2013-12-17 조회수 2642
소쇄원이라는 건축을 이해하려고 하면, 사실 조선사회의 지배적 이념이었던 성리학의 개념을 이해해야합니다. 우리가 지금 식영정과 환벽당을 둘러보고 왔지요.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소쇄원이 식영정과 환벽당의 성격을 비교할 때 어떤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우리가 식영정이나 환벽당에 진입할 때, 기본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입하였나요? 상승하는 것이었어요? 하강하는 것이었어요?학우들 : 상승이요.교수님 : 상승이었죠? 그렇다면 풍수상 돌출된 땅으로 우리가 올라갔다고 봅니다. 정자는 기본적으로, 주변경관을 건물 하나로 모두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 높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현대적인 건축물로 비유하자면 정자는 등대와 같습니다.우리가 문화재 건축이나 문화재 풍수라고 해서, 과거의 건축을 이해할 때 기본적으로 민가를 본다면, 기와집으로 지어진 양반집 주택이 있고, 일반 서민들 또는 하층 계급의 주거가 있습니다. 기본적인 형태가 다르죠? 기와집은 어때요? 끝이 올라가죠? 초가집은 어떻습니까? 끝이 내려가죠? 그래서 이것을 하강과 상승의 것으로 보는데, 담장을 기준으로 본다면 보통 양반집의 지붕이 담장보다는 훨씬 높습니다. 왜냐하면 상류층의 권위를 강조해야 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초가집은 어때요? 거의 다 처마선이 담장 끝부분에 마주칩니다. 사람으로 치면 옷깃을 여미고 몸을 웅크리고 있는 형태예요. 왜냐하면 초가집에서 겨울을 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옷을 얇게 입었을 때 겨울에 바람이 불면 어때요? 옷깃을 여미게 되어 있잖아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집의 형태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정자건축을 음양으로 따지면 양적입니까? 음적입니까?학우: 양적이요교수님 : 양적이죠! 드러나니깐 드러나는 것하고 숨는 것으로 놓고 본다면 양적입니다. 외부로부터 개방되어있어 있으니깐 정자는 양이지요. 소쇄원을 제외하고 주변에 있는 정자건축을 두 개밖에 안 봤지만, 거의 정자들의 공통적인 성격이 무엇이냐고 하면, 돌 터에다가 자리를 잡았어요. 그건 양적인 거예요? 음적인 거예요?학우 : 양적이요.교수님 : 양적입니다. 근데 이 소쇄원은 어때요? 들어와 보니 소쇄원은 들어올 때부터 계곡을 끼고 있지요. 소쇄원 주변의 정자는 큰 물을 중심으로 해서 큰 물을 바라보면서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쇄원 여기서는 큰 물을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교수님 : 들어오면서도 어땠습니까? 철저하게 가려져 있지요. 여러분이 들어올 때 바깥을 양이라고 하면 대나무 숲은 뭐가 되겠습니까?학우: 음입니다.교수님 : 음이죠? 음을 통해서 들어오니깐 또 넓어지겠죠? 음을 통해서 들어왔을 때 그런 자체는 양입니다. 대나무 숲을 통해서 양으로 들어왔습니다. 근데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주변에 있는 식영정이나 환벽당하고 비교한다면 이 터 자체는 음에 해당됩니다. 그렇게 비춰서 소쇄원을 이야기한다면 음이면서 양이고, 음 속에 양 있다. 전체의 큰 영역으로 본다면 이것은 음이고, 우리가 대나무 숲을 통해서 들어왔을 때 이 좁은 영역에서는 양이다. 그것이 태극에 있는 양 속에 음이 있고 음 속에 양이 있는 겁니다.교수님 : 대나무 숲이 있는 고개를 넘어왔습니다. 문지방을 건너오는 느낌을 받고, 이곳은 정자라기보다는 어떤 사찰을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면 제대로 느낀 겁니다. 알겠죠? 출입구에서 넘어올 때 다리 하나를 건넜죠? 그 다리가 볼품이 없는 콘크리트 다리였지만 다른 세계로 넘어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보통 왕릉이 있는 곳을 가면 홍살문이 있는데, 그 앞에 항상 물길이 지나갑니다. 그 다리의 이름이 무엇일까요? 교수님 : 금천교입니다. 금천교가 있는 자리에서부터 산사람이 넘어갈 때 조심해야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영적인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 이 다리 하나를 건널 때마다 수미산에 근접하는 한 단계로 올라가는 겁니다. 극락세계로. 그래서 굽이굽이 물길을 건너가는데, 여러 번 건너갈수록 어때요? 물길 따라서 올라갈 수 있는데 왜 비틀어서 건너가느냐 하는 것은 바로 소쇄를 하라는 겁니다. 소쇄한 후의 깨끗한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소쇄원입니다.여기 들어오면 담장이 중간에 하나 서있죠? 담장이 길을 가로막는 것도 아니고 담장이 어중간하게 오다가 끝나버렸습니다. 길은 바깥으로도 나 있고 안쪽으로도 나 있습니다. 여기서 담장은 일종의 대패와 같습니다.저 담장의 역할을 요즘으로 얘기하면 전시벽체의 역할입니다. 전시벽체의 역할을 하면서 양산보 선생이 의도했던 것은 바로 소쇄원학개론을 거기서 하는 것이지요.선비들의 소쇄원 방명록이 남아있어요. 방명록에 이름만 쓰는 것이 아니에요. 방문한 사람의 이름을 쓰면서, 그 옆에 소쇄원에 관련된 시를 적습니다. 시를 보면서 이 친구를 문 앞에서 돌려보내야 하는 사람인지, 제월당까지 모셔와서 차를 한잔할 수 있는 인물인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소쇄원에서 느껴야 하는 점이 ‘태양 속에 소음이 어떨 때 나타나는가? ’입니다. 저는 이것이 태극을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음 속 소양이 있고, 태양이 있고 소음이 있다는 정도의 설명으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태음 속에 소양이 있는 것이 어떻게 발휘가 되는 것인가 하면 전위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나무 숲을 통해서 들어왔을 때의 느낌이 기본적으로 태음인데, 그 음을 통해서 나오니깐 여기의 공간이 양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큰 음의 분위기에서 양의 느낌이 오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음을 거쳐서 지나왔기 때문에 양이 드러나는 거예요.저 다리를 건너면서 또 다른 세계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아까 저기 밑에서 다리를 건너는 것과 여기 다리를 건너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여기 들어오면서 벽이 하나 있지요. 담에 뭐라고 씌어져 있나요? 이따 나가시면서 한번 보셔요. 그것이 우암 송시열선생이 써준 문패이지요. 소쇄처사양공지려라는 문패가 저기에 붙어있어요. 원래, 소쇄원이라고 하면 대나무 숲을 지나자마자 여기서부터 소쇄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문패를 여기다 붙이느냐 말이에요. 여기하고 저곳은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이쪽은 내원이고, 저쪽은 외원입니다. 여기를 건너면서부터 진짜 소쇄원입니다. 여기가 문패 역할을 합니다. 이곳으로 들어오면 마당이 있죠? 여기 건물이 두 개, 제월당이 있고 광풍각이 있습니다. 원래는 광풍제월이 한 세트입니다. 광풍제월이라는 말에서 반을 쪼개서 저기는 광풍 여기는 제월이라고 붙인 겁니다. 이름으로 음양구분을 한다면 저것이 양이에요 이것이 양이에요? 음입니까? 광풍하고 제월이 있으면 광풍이 양입니다. 빛과 바람이 분다. 제월이라는 뜻은 비갠 뒤의 달이다 비갠 뒤의 달을 보면 달이 반짝반짝하겠죠? 청명한 달이 뜨겠죠? 그냥 예쁜 달이 아니고 이것은 생생한 달이라는 뜻이에요.저 제월당을 지으면서 쓴 상량문을 보면, 이 기둥은 조광조, 저 기둥은 누구하면서. . . 음양으로 따지면 저곳이 양이고 여기가 음입니다. 여기는 음적인 건물이고, 저기는 양적인 건물입니다. 저것이 개방적이에요? 이것이 개방적이에요? 저기가 다 보이죠? 구조 자체가 가운데에 온돌방이 있고 전부 터져있습니다. 온돌방까지 들창으로 들어버리면 뒤쪽에 벽체하나만 남습니다. 완전 개방적인 것입니다. 여긴 어때요? 오히려 이쪽이 남쪽인데 남쪽을 막았습니다. 도로가 어느 쪽에 있어요? 철저하게. 저기가 밑이고 여기가 위예요. 그럼 밑에 가 양입니까? 위에 가 양입니까?학우 : 위가 양이에요.교수님 : 위가 양이죠? 여기 왜 올라 왔을까요? 저것을 제월, 이것을 광풍으로 하면 되는데 여기를 손님방으로 하고, 저기를 주인 방으로 해야 되는데 왜 올라왔을까요? 그런 것을 화두로 잡고 풀어줘야 됩니다. 여기 마당이 있어요. 여긴 마당이 있고 저긴 마당이 있어요? 없어요? 음속에 양이 있는 거예요. 이런 게 저기는 광풍각 담 밑에 계곡이 있죠? 골짜기 있죠? 저기는 음적인 공간입니다. 양 속에 음이 있는 거예요. 음 속에 있고 양 속에 있고 자 저 밑에 내려 가면은 계곡을 위주로 보고, 바깥은 보지 말라는 것으로 산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제월당에 올라오면 비로소 보이는 산이 있습니다. 식영정이나 환벽당에서 보이는 산이 바로 저산입니다. 이 제월당에 올라오면 비로소 보이는 저 산입니다. 다 보이지는 않고 일부만 보입니다. 근데 이 마루에서 유일하게 저 산이 보입니다. 저 산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둥글게 생겼습니까? 저것은 금형의 산이에요. 금형의 산은 형국론으로 빗대어 보면 날짐승하고 비유가 됩니다. 저기 대봉대가 있었죠? 대봉은 멀 기다리는 걸까요?학우 : 봉황이요.교수님 : 봉황을 올라가서 볼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요? 학우 : 제월당입니다. 교수님 : 그리고 또 한가지 저곳에서는 물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저쪽은 사람이 장기간 거쳐 하기에 상당히 불리한 곳입니다. 그래도 여기 올라오면 좀 낫겠죠? 여기에 주인이 있으니깐 계속 거처하는 것입니다. 저기는 손님이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곳이고, 저기는 잠을 자는 데가 아니에요. 그 다음엔 아까 연못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물이 들어오는 방식이 서로 달라요. 하나는 적극적으로 나무를 파서 끌어들이고, 하나는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오게 합니다. 적극적인 것은 직선적으로 가죠? 직선적으로 가서 네모난 연지에다가 넣죠? 우리가 서원에 가면 직방재라는 것이 있어요. 곧을 직(直)에다가 네모난 방(方), 이것은 기하학적으로 선을 긋는 겁니다. 이것은 인위적인 것이죠? 인위적인 것은 양적일까요? 음적일까요? 사람 손이 가는 것은 양적인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것은 음적이고, 소극적이지요. 양적인 것과 음적인 방식의 물의 활용입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대봉대는 어때요? 막연히 기다립니다. 물을 끌어들이는 건 어때요? 내가 나서서 작업을 해야 됩니다. 이것은 굉장히 적극적입니다. 소극적인 것과 적극적인 것이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물이 흘러갔어요. 제가 음양으로만 해석했지만 조선 시대의 이러한 원리를 조성원리에서 기본적으로 성리학적 개념으로 천인합일의 사상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천인합일이 무엇이냐! 성리학에서 하늘의 도와 인간의 도가 같이 통했을 때 그게 천인합일입니다. 우주자연이 흘러가듯이 그 순리에 따라서 우리가 행동하고 생각을 한다고 할 때, 거리낌이 없으면 도가 성립이 된 것입니다. 그게 천인합일입니다. 그 천인합일을 어떻게 이루느냐 하면 자연을 통해서 이루는 겁니다. 그래서 자연환경이 좋은 곳으로 가서 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저 물이 참으로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구나,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이런 것들이 자연의 순리이구나, 달이 뜨는 구나 이런 것들을 보면서 시화되고 하면서 천인합일을 이루는 겁니다.답사에 참여하신 교수님. 학우님들 수고많으셨습니다.

소쇄원의 음양적 성격

설명: 원광디지털대학교 동양학과 조인철교수

답사참여: 동양학과 호남지역 학우님들

일시: 2013년 5월 26일

촬영: 박민정(호남지역장)

편집: 콘텐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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