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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일공동 술수학 심포지움-풍수답사 작성일 2014-02-05 조회수 2754
자, 한일 공동술수 심포지움의 일환으로 일본 학자 분들 모시고 오늘 영릉 신륵사 그리고 정몽주 선생님 명소를 둘러보러 왔습니다. 보통 우리가 이런 신성한 영역으로 들어갈 때, 문짝이 세 개 붙은 출입문을 통과할 때가 있습니다. 대체로 들어올 때는, 안쪽에서 봤을 때 좌측으로 들어오고, 나갈 때는 우측으로 나갑니다. 그런데 지금 다케다 선생님과 오노상은 오른쪽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 예제건축, 왕릉이나 종묘나 이런 곳은 기본적으로 예를 시행하기 위한 건축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실제로 가운데 문은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의 신들 혼이 다니는 문이라고 해서 가장 크고 좋은 자리에 문을 만들었지요. 하지만 저 문자체는 사용하지 않는 거죠. 어떻게 보면 기능주의적 건축과 예제건축은 상당히 개념이 다르다고 볼 수 있죠.그것은 이제 오행하고도 상당히 관계가 있습니다. 오행에...왼쪽은 항상 동쪽과 동일시되기 때문에 목의 기운을 뜻하고 있습니다.오른쪽은 서쪽과 동일시되면서 금의 기운과 관계가 있습니다.목의 기운은 시작 하는 것, 금의 기운은 마무리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그래서 다음 번 방문하실 때, 다케다 선생님은 동쪽의 좌측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우리 다케다 선생님은 다시 서쪽으로 나가서 동쪽으로 들어오시겠습니다.자, 여기 보시면 오른쪽에 연못이 만들어져 있는데요. 이 연못에 있는 물은 결국 여기 세종대왕능이 있는 능을 중심으로 봤을 때 좌청룡과 우백호 안쪽으로 떨어지는 물은 전부다 여기에 다 모이게 돼있습니다.풍수에서는 이렇게 물을 모으는 것을 하나의 재물과 같은 것으로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 안쪽에 들어온 물, 말하자면 하늘이 내려준 재물을 그냥 쉽게 내보내지 않고 한번 자기 주머니 역할을 하는 호수에 담았다가 내보내는 그런 기능을 하는 것으로 간주 됩니다.그리고 여기보시면 앞에 보이는 문이 홍살문이 있는데 저기서부터 실제적으로 신성한영역과 속된영역 성과속이 구분되는 그런 문의 역할을 하는 것이 저기 있습니다.어제제가 발표에서 보여드린 서원 앞에도 저것과 똑같은 홍살문이 있습니다.여기 보시면 길이 만들어져 있는데 길 자체가 약간 이렇게 가다가 홍살문 앞에서 휘어지게 되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휘어져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자연지형조건에 따른 것입니다. 또 하나 덧 붙여서 길의 형태와 얘기 하고 싶은 것은 직선적으로 바로 들어갈 경우에는 일종의 살기 생기와 반대가 되는 살기가 쉽게 침입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길을 이렇게 휘어지게 만듭니다.한자로 하면 홍전문이지요.이 위에 이렇게 문양으로 되어있는 것, 나무로 뾰족하게 하늘을 향하고 있는 이것이 마치 화살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것을 홍살문이라고 이렇게 부릅니다.제가 문제를 내겠습니다.살아있는 왕은 어떤 길로 가야 될까요?통역: 다케다 선생님은 아래 이 자리로.. /교수님: 미우라 선생님은?통역: 미우라선생님 그것도 문제가 되겠네요.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교수님: 뭐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교수님: 여기 가운데 길은 누가 다니는 길입니까?김지현 교수: 궁에서는 왕이 가운데 길로 다니니깐, 여기는 영릉이니까 가운데로 영릉의 주인이 다닐 것 같아요.교수님: 그렇죠. 역시 학자 분들이라서 다른 것 같습니다. 궁궐에서는 왕이 다니는 길에는 항상 장식이 되어 있지요.사실 여기는 장식이 되고 많은 공력이 들어간 계단을 만들었지만 실제로 산 사람은 이 계단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계단을 올라갈 때, 법식이 있습니다.오른발을 먼저 단위에 올리고, 왼발을 모은 다음에, 그다음에 한단, 또 올라갈 때 오른발을 올리고 왼발을 모으고. 이렇게 두발을 항상 모은 상태에서 다음단계로 올라갑니다. 이런 방식을 택하게 된 배경에는 아마도 한쪽 발만으로 올라갈 때는 쓰러지거나 넘어질 우려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제가 알려드린 방식으로 계단한번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세종대왕 영릉에 일본 학자 분들을 모시고 오니깐 학자 분들이 상당히 신기해하고 좋아하는 것 같아요.제가 묵념하면 묵념하고요. 바로 하시면 이렇게 하시면 되겠습니다.묵념, 바로그래서 풍수가들 사이에는 명당을 찾기 전에 삼대가 덕을 쌓아라. 좋은 일을 해라.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풍수적으로 과연 명당인가 평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먼저 이 자리를 보면 좌청룡 우백호가 잘 감싸져 있습니다.이 자리는 어제 미우라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것과는 다르게 우백호가 좀 더 긴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그런데 저 우백호 건너에 보이는 저 산이 조산(朝山)에 해당되겠습니다. 아침 조자(朝字)를 씁니다.자, 영릉을 거쳐서 우리가 신륵사로 왔습니다. 신륵사는 영릉의 원찰 그러니깐 사찰과 왕릉이 하나의 세트로서 봐주어야할 곳 인 것 같습니다.이 사찰의 이름이 신륵사입니다. 신륵사. 신륵사는 사실은 불교사찰이지만 불교사찰 외에 3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첫 번째, 원찰의 기능, 불교사찰 외에 다른 기능은 우리가 다녀온 세종대왕 영릉을 지키고 세종대왕이 좋은 곳으로 극락왕생하는 것을 빌어주는 그런 사찰로서 한국에서는 그런 사찰을 원찰이라고 합니다.그 다음의 기능, 이 사찰이 물가에 있어서 여기 나루터가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운송수단으로 배로 많이 이용했기 때문에 여기, 신륵사를 일종의 요즘으로 치면 호텔 같은 숙소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습니다.다른 곳으로 갔다가 먼 길을 가야할 때, 중간 기착지로 사용했습니다.김지현교수: 보통사람들도 다 사용할 수 있었어요?교수님: 네, 일반 양반들도 다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요.그 다음에 이제 풍수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 바위가 말하자면 남한강이 이렇게 와서 굉장히 강력한 수의 살기인 물살, 수의 살기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이 바위가 되겠는데요. 이 바위로 인해서 사실은 이쪽에 있는 여주 시내가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실제로 비가 많이 올 때는 이 바위 바로 밑에까지 물이 차는 경우도 있습니다.그래서 풍수상으로 이러한 물줄기 형태를 반궁수라고 합니다.그래서 여주라는 시. 남한강의 물살이 굉장히 세게 오다가 이 바위에 한번 부딪힘으로써 물의 세기가 굉장히 약해집니다. 그래서 물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저쪽의 여주시 쪽으로, 굉장히 영양분이 풍부한 퇴적층이 생깁니다. 그래서 여주에서 나온 쌀, 고구마, 그것이 농산물로 유명하고요. 좋은 토질이 있기 때문에 도자기도 생산되고요. 그래서 이 바위가 여주나 한양이라는 도시로 봤을 때, 남한강이 뭉쳐져서 한강이 되자나요. 그러면서 물살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 바위는 예전부터 굉장히 중요시되는 바위입니다.통역: 그럼 이 바위가 있으면 물살을, 살기를 없애는 충분한 기능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절까지 지을 필요가 있을까요?교수님: 지금 그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확실히 미우라 선생님은 제가 할 얘기들을 미리 고민하시고 질문하시는 것 같아요.그래서 저기에는 탑이 있습니다. 사실 저런 탑은 보통 불교 사찰에서 대웅전 앞에 탑을 세우는 것이 원칙입니다.저 위에 있는 건 벽돌로 지은 전탑이라고 하는데요. 저 전탑은 또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첫 번째는 해시계의 역할을 합니다. 저기 밑에 보시면 바위의 사방으로 동서남북이 표시가 돼있습니다.또 한 가지 기능은 배를 타고 저 상류층에서 내려오면서 저기 전탑을 보면 여기에 신륵사가 있고요. 내가 오늘밤에 여기를 머무를 수 있겠구나 하는 전망대, 등대같은 역할을 합니다.그런데 전탑으로 지은 이유를 풍수적으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이 바위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이 바위가 흔들리거나 문제가 생기면 저 전탑에 바로 그 문제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 바위에 문제가 생기면 여주시내가 홍수의 수재를 입게 됩니다.그래서 이 바위에 문제가 만일 생기면 긴급처방을 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사찰이 운영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보통 사찰을 가면, 본존불로 석가모니불로서, 석가모니불을 모신 곳을 대웅전이라고 하는데요. 여기는 극락보전으로 되어있네요. 극락보전은 아미타 삼존불을 모신 전각이 되겠습니다. 신륵사는 특이하게 아미타 삼존불을 모신 극락보전이 있습니다. 지금 저기 일본학자 분들이 아까 제가 말씀을 드렸더니 들어가서 참배를 드리고 있습니다.이 조사당이라는 건물은 이름 난 스님, 선대에 계셨던 이름 난 스님을 모시는 것인데요. 거기에 영정의 제일 좌측에 있는 무학대사. 가운데 계신 분이 지공대화상, 제일 좌측에 계신분이 아까 설명을 드렸던 나옹대화상, 이렇게 얼굴을 뵈면 게으르게 생기지 않으셨죠? 관상이. 굉장히 바쁘셨던 분 같아요. 지금 저 순서로 보면, 가운데 분이 먼저이고, 그 다음 나옹대화상이 되겠고 뭐 이런 순서의 계열로 보시면 되시겠습니다. 우리가 심포지움의 마지막 날로 현장답사를 곁들여서 풍수공부를 했는데요. 우리가 들린 곳이 두 군데입니다. 첫 번째가 여주 영릉, 세종대왕이 묻혀 있는 곳, 그곳을 다녀왔고요. 영릉의 원찰인 신륵사를 다녀왔습니다. 아마도 일본에서는 이러한 왕릉제도나 사찰의 형식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일본 학자 분들이 느끼시는 바는 상당히 달랐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일본에서 오신 교수님들! 오늘 답사에 만족하셨는지요? 통역 좀 해주십시오. 만족하셨으면 박수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2013. 9. 15

한일공동 술수학 심포지움 ? 풍수답사

경기도 여주 지역: 영릉(영릉), 신륵사(영릉의 원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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